
<개교기념일>이라는 영화를 처음 알게 된 건 작년 가을, 지인이 보내온 짧은 메시지 때문이었습니다. "이 영화 봤어? 너무 웃긴데 좀 슬프기도 해." 클릭해보니 OTT 화제작 목록 어딘가에 올라와 있었습니다. 수능일에 맞춰 개봉했다가 3만 명 남짓의 관객을 모으고 극장에서 내려왔던 저예산 호러 코미디. 그런데 OTT에서 이 영화를 발견한 사람들이 친구들과 함께 밤에 모여 떡볶이를 먹으며 보는 이른바 '걸스 나잇' 문화를 타고 퍼져나갔고, 왓챠 '걸스 나잇' 영화 1위에까지 올랐습니다. 보고 나서 저도 그 메시지의 의미를 이해했습니다. 황당하고 웃기지만, 그 안에 분명히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 영화를 만든 김민하 감독이 이번엔 <교생실습>을 들고 왔습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코리안 판타스틱 부문 작품상과 배우상(한선화)을 동시에 수상한 작품입니다. 감독 인터뷰를 읽으면서 저는 한 가지 질문을 붙들었습니다. 이 사람은 왜 포기하지 않았을까.
'억까'의 시작: 개봉 첫 주부터 5주까지
<개교기념일>의 개봉 첫 주 대진표는 <베놈 2>였습니다. 2주차엔 <글래디에이터 Ⅱ>, 3주차엔 <위키드>, 4주차엔 <모아나 2>. 그리고 5주차에 비상계엄이 터졌습니다. 김민하 감독은 이것을 두고 "억까를 이렇게 하라고 해도 못 한다"고 했습니다. 결과는 최종 3만 관객. 손익분기점이 워낙 낮은 제작비였으니 극장 흥행 자체가 재앙은 아니었지만, 기대했던 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더 큰 타격은 심리적인 것이었습니다. <교생실습>은 원래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2: 교생실습>이라는 제목이었습니다. 그런데 3만 관객 영화의 속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나가면 배급도, 투자도 모이지 않을 것이 뻔했습니다. 제목에서 시리즈 명칭을 떼어냈고, 제작비도 10억에서 <개교기념일> 수준으로 줄였습니다. 그러고도 제작 중단을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합니다. 그때 키 스태프들이 한 명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계속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였습니다.
역주행이 개봉을 만들었다
전세를 뒤집은 것은 OTT였습니다. 2025년 9월, <개교기념일>이 왓챠에서 '걸스 나잇' 영화 1위에 오르면서 SNS에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0월, 청룡영화상에서 출연 배우 김도연이 신인여우상 후보에 올랐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기뻐서 울면서 3만 보를 걸었다는 감독. 다음 날엔 자신이 신인감독상 후보라는 소식까지 날아왔습니다. 결국 김도연 배우가 신인여우상을 수상했고, 그 시상 장면에서 우는 감독의 모습이 방송에 잡혔습니다. 그 일련의 사건들이 <교생실습> 개봉을 위한 힘을 모았습니다.
독립영화의 OTT 역주행이 창작자에게 실질적인 보상으로 이어지지 않는 현실을 생각하면 이 과정이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습니다. <개교기념일>의 역주행이 <교생실습> 개봉의 발판이 됐다는 것은 다행이지만, 역주행 자체가 감독의 통장을 두둑하게 만들어줬을 가능성은 낮습니다. 역주행은 영화를 살렸지만, 창작자를 충분히 살렸는지는 별개의 질문입니다.
왜 여고인가, 왜 호러 코미디인가
김민하 감독은 산속 남자고등학교 출신입니다. 남고에서 퇴마하는 이야기는 상상이 잘 안 된다고 스스로 말합니다. 대신 <여고괴담> 시리즈를 교복 입고 봤던 세대로서, 그 시리즈가 자신 안에 남긴 것이 있었습니다. 입시와 왕따, 소녀들의 연대와 갈등. 신인 감독으로 데뷔하려면 저예산 호러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호러 영화를 쌓아나가던 중, 그 두 가지가 만났습니다. "내 세대의 <여고괴담> 뉴 제너레이션을 만들어보자."
<교생실습>에는 세 가지 슬픔이 담겨 있습니다. 무너진 교권, 일제강점기에 강제로 사라진 서당, 그리고 학생 수는 줄었는데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는 27조 원짜리 사교육 시장. 귀신 '이다이나시'는 파파고로 '위대한 스승'을 일본어로 번역한 단어입니다. 학생들의 영혼을 받아 성적을 올려주는 이 귀신의 설정에 서당 토벌의 역사가 녹아들었습니다. 아재 개그가 난무하고 병맛 코미디가 휘날리는 영화 안에 이 무게들이 들어있습니다.
그것이 이 영화의 특이한 지점입니다. 웃기려고 만들었는데 슬프고, 슬픈 이야기를 하려는데 웃깁니다. 2023년 교육영화제에서 단편을 상영한 뒤 로비에서 선생님들이 눈물을 흘렸다는 에피소드, 그리고 그날이 서이초 교사의 49재 추모 주간이었다는 것. 이 감독이 코미디로 품으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최소한의 무장으로 백병전처럼: 저예산 연출의 논리
<개교기념일>은 16회차, <교생실습>은 20회차로 촬영됐습니다. 버리는 컷이 없도록 콘티 단계에서 모든 시뮬레이션을 돌린다고 합니다. 특수부대에 비유하자면 모든 적을 제거하는 게 아니라 두목만 정확히 건드리고 나오는 방식. 담백하고 정확하게.
흥미로운 것은 B급 코미디의 기세 자체가 제작비 절감에 도움이 된다는 감독의 설명입니다. 흑마술 동아리 삼인방이 거울 속으로 뿅 사라지는 장면이 있는데, 간단한 촬영입니다. 원래 <나니아 연대기>처럼 만들고 싶었지만 그렇게 못할 바에는 정면 돌파를 택했습니다. 관객들이 웃어줬다고 합니다. "얘들이 어떻게든 영화를 진행하려고 노력했구나, 기특하다"는 웃음. 그 웃음이 예산의 빈자리를 채웠습니다.
한선화 캐스팅 과정도 인상적입니다. 20~30분 미팅을 예상했더니 2시간을 이야기했고, 한선화는 시나리오를 프린트해서 다 읽어온 상태였습니다. 종이가 이미 부풀어 있었다고 합니다. 아직 출연 도장을 찍기 전인데. 그 순간 서로가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감독은 말했습니다.
독립 장르 영화에 필요한 것: 감독이 직접 말한 제도적 공백
감독이 인터뷰에서 조심스럽게 꺼낸 이야기가 있습니다. <개교기념일>과 <교생실습> 모두 독립예술영화 인정을 받았지만, 영진위 제작지원 선정작 중 독립예술 '장르' 영화는 찾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예술영화 지원은 있지만 호러, 코미디, SF 같은 장르를 구사하는 독립영화는 그 지원 안에서 낯선 존재가 됩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불만이 아닙니다. 한국 독립영화 생태계의 구조적 공백을 가리키는 이야기입니다. 저예산으로 장르 영화를 만들려는 청년 감독들이 기댈 수 있는 지원 체계가 현재로서는 거의 없습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큰 울타리가 되어줬다고 감독은 말했습니다. 영화제 하나가 제도적 공백을 채우고 있는 셈입니다.
팬덤이 극장을 살리는 방식을 다룬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SNS의 자발적 응원과 입소문이 독립영화의 생존 경로가 되는 지금, 그 경로를 제도가 뒷받침하지 못하면 운 좋은 역주행 하나에 모든 것을 의존하게 됩니다. "SNS에서 '우리가 <교생실습>을 봐줘야 다음 편을 볼 수 있어'라고 응원해주시는 분들에게서 용기를 얻는다"는 감독의 말에는 그 아슬아슬함이 담겨 있습니다.
5편까지, 그리고 6편의 총동문회
김민하 감독의 목표는 <아메바 소녀들> 시리즈를 5편까지 만들고, 6편에서 멀티버스 포털을 열어 모든 시리즈의 캐릭터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것입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포털이 열리며 히어로들이 집결할 때 미국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 질렀다는 그 장면. 그것이 이 감독의 꿈입니다.
황당하고 거창합니다. 그런데 황당한 꿈을 진지하게 품은 사람이 3만 관객 영화를 포기하지 않고 부천 수상작까지 만들어냈습니다. 팬 많은 유명 남자 배우를 넣으면 투자를 생각해보겠다는 제안, 티켓 파워 때문에 신인 배우를 쓰면 안 된다는 편견. 이것들과 싸워가며 매년 한 편씩 찍겠다고 합니다.
저는 이 감독의 다음 영화를 기다릴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바랍니다. 그 다음 영화가 또다시 역주행으로만 살아남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만들어지기를. 좋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또 다른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구조. 그것이 한국 독립영화 장르 생태계에 지금 필요한 것입니다.
참고: 영화진흥위원회 웹매거진 한국영화 「<여고괴담> 뉴 제너레이션의 완성을 향해 — <교생실습> 김민하 감독」(김혜선, 2026.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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