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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산업 및 문화 분석

한국은 주도권을 잡고 있는가 — 국제공동제작 펀드의 현실과 과제(영화 펀드, 구조적 문제, 글로벌 전략)

by sangsang2025 2026. 6. 9.

"한국은 주도권을 잡고 있는가 — 국제공동제작 펀드의 현실과 과제"라는 크고 굵은 제목이 왼쪽 상단에 배치된 블로그 썸네일. 배경은 세계 지도와 데이터 그래프, 그리고 네 명의 비즈니스 전문가들(서양 남성, 한국 여성, 서양 여성, 동양 남성)이 대화하고 협력하는 모습을 담은 전문적이고 현대적인 그래픽 스타일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한국 영화 관계자들이 해외 마켓에 나가면 먼저 명함을 내밀고, 먼저 미팅을 요청해야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기생충>이 칸과 오스카를 동시에 석권하고,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 전 세계를 점령한 이후부터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합니다. 이제는 해외 제작사와 펀드 담당자들이 먼저 한국 프로듀서를 찾는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한국이 문을 두드렸다면, 지금은 세계가 한국의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이 역전된 구도가 기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기쁨 뒤에 따라붙는 질문이 있습니다. 세계가 문을 두드릴 때, 한국은 그 문을 어떻게 열고 있는가. 그리고 열린 문 안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가. 영화진흥위원회가 2026년 상반기 국제공동제작 시범사업을 재개하면서 이 질문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안개 속의 코끼리>는 네팔, 독일, 브라질, 프랑스, 노르웨이 5개국이 참여한 공동제작 작품입니다. 2025년 칸 비평가주간 수상작인 <쓸모 있는 귀신>도 태국을 중심으로 프랑스, 싱가포르, 독일이 함께 만들었습니다. A-리스트 영화제에서 주목받는 아시아 영화들이 점점 더 국제공동제작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트렌드가 아니라 구조적 변화입니다. 제작비는 오르고 공공 지원은 줄어드는 현실에서, 국제공동제작은 선택이 아닌 생존 전략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이 이 흐름 안에서 어떤 역할을 설계하느냐가 지금의 핵심입니다.


재개된 지원, 그러나 공백의 상처가 남아 있다

영진위의 국제공동제작 지원이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운영되던 국제공동제작 인센티브와 기획개발 지원사업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한 해외교류 단절, 영화발전기금 고갈이 맞물리면서 한동안 중단과 축소를 반복했습니다.

그 공백의 시간 동안 역설적으로 한국 콘텐츠의 위상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높아졌습니다. 지원은 줄었지만 현장은 움직였고, 그 결과 만들어진 신뢰와 네트워크가 지금 한국 영화의 국제적 위치를 만들었습니다. 2026년 상반기 재개된 시범사업에서는 베트남, 미국, 인도네시아, 프랑스와의 공동제작 4개 작품에 총 16억 원이 지원됐습니다. 오랜 공백 끝의 첫걸음으로서는 의미 있는 출발입니다.

주목할 점은 한국이 지원받을 수 있는 펀드와 그렇지 않은 펀드가 분명히 나뉜다는 것입니다. 영화 인프라가 비교적 잘 갖춰진 한국은 일부 펀드의 직접 신청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하지만 지원 대상국 프로젝트의 공동제작 파트너로 참여하거나, 국적 제한이 없는 베니스 비엔날레 컬리지, 선댄스 인스티튜트, 레드시 펀드, 도하 필름 인스티튜트 등에는 직접 접근이 가능합니다. 이 구분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그런데 국제 무대의 현실과 비교하면 이 숫자는 아직 초라합니다. 독일 베를린국제영화제가 운영하는 월드 시네마 펀드, 이탈리아 베니스의 비엔날레 컬리지 시네마, 카타르의 도하 필름 인스티튜트, 사우디아라비아의 레드시 펀드. 이 펀드들은 단순한 제작 지원을 넘어 선정 자체가 국제 시장에서의 신뢰 인증이 되고, 멘토십과 네트워크, 배급 연결까지 따라오는 생태계입니다. 한국이 이 생태계 안에서 어떤 위치를 설계하느냐가 지금의 핵심 과제입니다.


세 가지 구조적 문제: 지금 한국이 놓치고 있는 것

첫째, 펀드를 목적으로 삼는 역주행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국제공동제작을 고민하는 현장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질문은 "어느 펀드에 지원해야 하나요"입니다. 그러나 이 질문은 순서가 잘못됐습니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이 이야기는 왜 국경을 넘어야 하는가", "서로 다른 시선이 만났을 때 무엇이 새롭게 탄생하는가"입니다. 방향이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찾은 기회는 오래 지속되지 않습니다. 펀드는 수단이어야지, 목적이 되는 순간 협업의 본질이 흔들립니다.

둘째, '을'의 협업 구조가 관행처럼 굳어지고 있습니다. 국제공동제작에서 minority(소수 지분)와 majority(주도적 지분)는 우열이 아니라 역할의 차이입니다. 그런데 한국이 해외 대형 펀드에 접근할 때 소수 파트너 역할에 머무는 경우가 많습니다. 재원 비율이 낮으면 의사결정권도 제한되고, IP 소유구조에서도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됩니다. K-콘텐츠의 위상이 높아진 지금, 이 관행을 그대로 이어가는 것은 기회를 반만 쓰는 것과 같습니다. 창작 기여도와 IP 주도권을 중심에 두는 협약 구조로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셋째, 펀드 지원금의 실무적 함정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해외 펀드의 지원 규모는 숫자만 보면 매력적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제공동제작 펀드는 지원금의 절반 이상을 해당 국가에서 사용하도록 요구합니다. 전액 또는 그 이상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기에 심사 기간의 길이, 선정 이후에도 전체 예산의 70% 이상이 확보되거나 배급 계약이 체결되어야만 실제 집행이 이루어지는 구조까지 더해집니다. 얼마를 받는가만큼이나 언제, 어디서 받는가를 함께 계산하지 않으면 제작 일정 전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K-무비의 북미 진출과 글로벌 공동제작의 실효성을 분석한 글에서도 짚었지만, 공동제작은 전략 없이 뛰어들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이 주도권을 잡으려면: 세 가지 대안

첫째, 단발 지원이 아닌 전략적 파트너십 설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영진위의 시범사업이 '올해 4개 작품 지원'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한국 콘텐츠의 영향력이 강한 동남아시아, 중동, 남미 지역의 제작사 및 펀드와 장기 공동개발 협약을 맺는 방식으로 진화해야 합니다. 프랑스 CNC가 다양한 국가와 양자 공동제작 협정을 맺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듯, 한국도 전략 국가를 선별해 구체적인 파트너십 로드맵을 설계해야 합니다. 한 번의 지원이 아니라, 관계의 구축이 목표여야 합니다.

둘째, majority 구조의 공동제작을 확대해야 합니다. 한국 감독의 이야기, 한국 IP를 중심에 두되 해외 파트너가 해당국 펀드를 끌어오는 구조. 이것이 한국이 지향해야 할 방향입니다. 도하 필름 인스티튜트의 후반작업 지원을 받으면서도 작품의 창작적 주도권과 IP는 한국 제작사가 보유하는 방식이 가능합니다. 재원 비율이 아닌 기획과 개발 단계에서의 주도적 참여가 이 구조를 만드는 열쇠입니다.

셋째, 부산국제영화제의 A-리스트 지위를 전략 자산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부산은 국내 유일의 FIAPF A-리스트 영화제입니다. 단순한 상영 행사가 아니라, 국제 펀드 담당자와 프로듀서들이 만나는 인더스트리 허브로서의 기능을 더욱 강화해야 합니다. 피칭 플랫폼과 공동개발 프로그램을 부산 중심으로 집결시키고, 한국이 협업의 중심지가 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 이것은 가능한 일입니다.


주도권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국제공동제작이 모든 영화의 정답은 아닙니다. 어떤 프로젝트는 국내에서 만드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어떤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여러 나라가 함께할 때 더 좋은 영화가 됩니다. 중요한 것은 선택의 문제이지, 국제공동제작 자체가 목적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이 처한 상황은 선택의 여지가 있을 때 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점에서 긴박합니다. K-콘텐츠의 위상이 만들어준 이 시간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전주시네마프로젝트가 12년간 쌓아온 국제 신뢰가 예산 한 줄에 흔들리는 현실이 보여주듯, 제도적 뒷받침 없이 쌓아 올린 성과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습니다. 현장의 개별 프로듀서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개척해온 국제공동제작의 길을, 이제는 산업 전체의 전략으로 끌어올릴 때입니다.

세계가 한국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지금. 그 문을 어떻게 열지, 그 안에서 무엇을 설계할지는 우리의 몫입니다. 주도권은 위상이 높아진다고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전략과 예산과 제도가 함께 설계될 때 비로소 우리 것이 됩니다.


참고: 영화진흥위원회 웹매거진 한국영화 「협업의 구조와 가능성을 설계하자 — 국제공동제작펀드 활용 가이드」(오희정, 2026.06.08)

작성자: sangsang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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