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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산업 및 문화 분석

K-콘텐츠가 세계를 향할수록 소외되는 사람들이 있다 — 음성해설이 던지는 질문(콘텐츠 접근성, 시각장애인 영화 관람, 세계화)

by sangsang2025 2026. 6. 5.

K-콘텐츠의 글로벌 성공을 축하하는 화려한 상단과 소외된 이들을 보여주는 차분한 하단이 대비되는 일러스트레이션입니다. 상단에는 세련된 K-드라마 배우들과 환호하는 다양한 글로벌 팬들이 'Global Success'와 'K-drama', 'K-content' 텍스트와 함께 묘사됩니다. 중앙의 거대한 물음표 아래, 하단 전경에는 pensive한 표정의 노인 여성과 지팡이, 헤드폰을 착용한 시각 장애인 남성이 함께 앉아 경청하고 있습니다. 'K-pop' 필름 스트립과 헤드폰, 'AD' 아이콘이 있는 음파가 소외된 접근성을 시각화합니다.

얼마 전 이모가 백내장 수술을 받으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수술 후 회복 기간 동안 자막을 제대로 읽기 어려운 상태가 이어졌는데, 그때 처음으로 OTT 음성해설 기능을 써보셨다고 합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익숙해지고 나니 오히려 화면에 집중하는 새로운 감상 방식을 발견했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음성해설은 시각장애인만을 위한 서비스가 아니구나. 그리고 동시에 또 다른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오징어게임과 기생충이 전 세계를 휩쓸고, K-드라마가 넷플릭스 글로벌 차트를 점령하는 시대에, 정작 한국 안에서 이 콘텐츠들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국콘텐츠접근성연구센터 서수연 대표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이 질문이 더 선명해졌습니다. 국내 1호 음성해설 작가로 23년째 이 일을 해온 그는 7,500편이 넘는 작품에 소리로 이미지를 입혀왔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직업 소개가 아니었습니다. K-콘텐츠 세계화의 이면에서 우리가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정면으로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음성해설은 '번역'이다 — 얼마나 정교한 일인가

많은 사람들이 음성해설을 단순한 영상 묘사로 생각합니다. 화면에 보이는 것을 말로 설명해주면 되는 것 아닌가 하고요. 그러나 서수연 대표가 2010년 영국 전문가의 발제에서 처음 들었다는 한마디가 이 오해를 단번에 무너뜨립니다. "음성해설은 번역이다."

생각해보면 정확한 표현입니다. 시각 정보를 청각 언어로 전환하는 것은,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것만큼이나 섬세하고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작업입니다. SF영화에 등장하는 우주선 버튼 하나의 이름을 정확히 찾기 위해 논문을 뒤지고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세 시간을 쏟는다고 합니다. 미국 드라마 <CSI: 과학수사대>에 나오는 약물 이름 하나를 확인하기 위해 프레임을 정지시키고 영어 스펠링을 일일이 메모합니다. 사극에서는 '책상' 대신 '서탁', 현대극에서도 시대에 맞는 휴대폰 이름을 정확히 구별합니다.

가장 어려운 부분은 선해설과 후해설의 타이밍입니다. 너무 일찍 설명하면 스포일러가 되고, 너무 늦으면 맥락을 잃습니다. 대사와 대사 사이 단 몇 초의 공백 안에 이미지의 핵심을 압축해 넣어야 합니다. 서 대표는 이것을 '분석력, 압축력, 따뜻한 마음'이라는 세 가지로 요약했습니다. 단순히 화면을 보고 쓰는 일이 아닙니다. 10년 이상 경험을 쌓아야 겨우 잘한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고난도의 전문 영역입니다.

그리고 좋은 음성해설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를 넘습니다. <더 킹: 영원의 군주>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음성해설 파일을 비시각장애인들이 구해 운전 중에 듣거나, 재방송을 볼 때 음성해설과 함께 감상하는 문화가 생겨났습니다. 마치 라디오 드라마처럼. 음성해설은 이미 하나의 독립적인 콘텐츠 형식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세계는 앞서가고, 한국은 의무만 채운다

K-콘텐츠의 세계화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주로 수출과 흥행을 말합니다. 그런데 콘텐츠의 진짜 완성도는 그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닿을 수 있는가로도 측정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 기준에서 보면, 한국 미디어 산업이 세계화의 속도만큼 내부 디테일을 갖추고 있는지 솔직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영국은 현재 넷플릭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디즈니+ 등 주요 OTT 플랫폼에 전체 콘텐츠의 80% 이상에 자막, 10% 이상에 음성해설, 5% 이상에 수어 서비스를 의무 제공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법적 의무 비율이 10%이지만, BBC 같은 공영방송은 자체적으로 20% 이상을 초과 달성한다는 점입니다. 의무를 넘어서는 자발적 기준이 존재합니다. 유럽연합은 지난해부터 '유럽 접근성법'을 시행해 디지털 콘텐츠 전반에 장애인 접근성을 보장하도록 의무화했습니다. 넷플릭스는 시각장애인이 음성해설 제작에 직접 참여하는 전문 인력 양성 프로그램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현실은 어떨까요. 영화진흥위원회의 '가치봄' 서비스가 2005년부터 전국 74개 관에서 한글자막과 화면해설을 제공해온 것은 의미 있는 출발입니다. 그러나 의무 비율 10%를 채우는 데 그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것도 채우는 것 자체가 목표인 수준입니다. 서수연 대표가 23년간 이 일을 해왔지만 영화진흥위원회와 아직 함께 일해본 적이 없다고 한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국내 1호 음성해설 작가와 영화 공공기관이 아직 접점을 찾지 못했다는 것, 이것이 한국 콘텐츠 접근성의 현주소를 압축합니다.

프랑스 CNC의 다양성 지원 정책을 다룬 글에서도 짚었지만, 콘텐츠 접근성은 선의의 문제가 아니라 예산과 제도의 문제입니다. 한국이 콘텐츠 강국을 자처하는 만큼, 그 콘텐츠가 국내에서도 모두에게 닿을 수 있는 구조를 갖추는 일이 세계화만큼 중요합니다.


세계화의 디테일은 내부에서 시작된다

K-콘텐츠의 세계화가 가속화될수록 역설적으로 내부의 디테일이 더 중요해집니다. 글로벌 플랫폼에서 한국 콘텐츠를 소비하는 외국 시청자들에게는 자막과 더빙, 음성해설이 기본적으로 제공됩니다. 그런데 정작 그 콘텐츠를 만든 나라에서 장애인, 노인, 자막 읽기가 어려운 사람들은 동등한 접근을 보장받지 못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복지 문제가 아닙니다. 콘텐츠 산업의 완성도 문제이고, 문화 권리의 문제입니다.

팬덤문화와 한국 영화산업을 다룬 글에서 관객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콘텐츠를 소비하고 확산시키는지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그 관객 중에 음성해설 없이는 영화관에 갈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팬덤의 힘도 그 사람을 포함하지 못한 채로 작동하는 것입니다. 더 많은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오고 싶다면, 먼저 극장의 문턱을 낮춰야 합니다.

더빙의 감소도 같은 맥락에서 짚어야 합니다. 지상파 황금시간대에 외화를 더빙해서 방영하던 시절은 이미 추억이 됐습니다. 외국어 원음을 선호하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더빙은 '퀄리티 낮은 것'이라는 인식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노인, 시력이 약한 사람, 자막을 읽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더빙은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일 수 있습니다. 음성해설과 더빙을 결합하면 시각장애인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됩니다. 서수연 대표의 표현을 빌리면, 그것이 진짜 '경계 없는 콘텐츠'입니다.


희망과 비판 사이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희망적인 신호는 있습니다. 음성해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23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습니다. OTT 플랫폼들이 음성해설을 기본 옵션으로 제공하기 시작했고, 시각장애인 임덕윤 감독처럼 음성해설 덕분에 영화를 만드는 꿈을 다시 품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 서비스의 가치를 증명합니다. 모두미술공간처럼 장애 예술 전문 공간에서 음성해설 작품이 제작되는 것도 긍정적인 변화입니다.

그러나 비판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세 가지입니다.

첫째, 대본료와 처우가 여전히 턱없이 낮습니다. 단 한 문장을 위해 세 시간을 고민하고, 수천 편의 작품을 작업한 전문가에게 돌아가는 보상이 그 노고에 비해 너무 작습니다. 고품질 음성해설을 원한다면 그것을 만드는 사람에게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좋은 번역가에게 번역료를 제대로 줘야 좋은 번역이 나오듯이.

둘째, 의무 비율 10%라는 기준 자체를 재검토해야 합니다. 영국이 자발적으로 20%를 넘기는 상황에서, 한국은 여전히 10%를 목표로 삼는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의무 비율을 높이는 것과 함께, OTT 플랫폼에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법적 정비가 필요합니다. 극장에서는 음성해설을 들을 수 있지만 집에서 OTT로는 안 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셋째, '시혜'가 아닌 '권리'로의 인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과거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이라는 표현이 시혜의 뉘앙스를 담고 있었다는 지적은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음성해설은 베푸는 것이 아닙니다. 영화를 볼 권리, 문화를 즐길 권리,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주어져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 인식의 전환 없이는 어떤 정책도 절반짜리에 그칩니다.


세계가 K-콘텐츠를 볼 때, 우리는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

기생충이 아카데미를 수상하던 날, 봉준호 감독은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자막이라는 장벽을 넘는 것. 그것은 외국 관객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시각장애인에게는 화면 자체가 장벽입니다. 노인에게는 작은 자막 글씨가 장벽입니다. 더빙이 사라진 환경에서 청력이 약한 사람에게는 원어 대사가 장벽입니다.

K-콘텐츠가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를 이루려면, 그 콘텐츠가 먼저 국내에서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합니다. 화려한 수출 성과 뒤에 내부의 접근성 문제를 방치한다면, 그것은 완성된 세계화가 아닙니다. 음성해설은 그 완성도를 측정하는 하나의 기준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 기준에서 한국은 아직 할 일이 많습니다.

서수연 대표는 23년 전 작가와 성우가 되고 싶었던 꿈을 음성해설이라는 형태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 꿈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도록, 이제는 제도가 그 꿈을 받쳐줄 차례입니다.


참고: 영화진흥위원회 웹매거진 한국영화 「경계 없는 모두의 콘텐츠를 위하여 — 서수연 한국콘텐츠접근성연구센터 대표」(곽명동, 2026.05.11)

작성자: sangsang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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