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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편이 본편을 구한다 — 숏폼 시대, 30초가 흥행을 결정하는 이유 얼마 전 인스타그램을 무심코 넘기다가 30초짜리 영상 하나에 스크롤을 멈췄습니다. 좀비들이 무언가를 주고받는 듯한 낯선 움직임, 그 위로 스쳐 지나가는 화려한 배우들의 얼굴. 『군체』 예고편이었습니다. 정작 영화는 몇 주 뒤에나 봤는데, 그 30초짜리 영상은 본 순간부터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러 가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건 리뷰도, 평점도 아니고 바로 그 짧은 영상이었습니다.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입니다. 저는 영화를 좋아하고 리뷰도 즐겨 씁니다. 그런데 정작 극장에 가야겠다고 마음먹는 순간의 8할은 예고편이었습니다. 예고편을 30년째 만들어온 제작사 줌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이 짧은 영상이 왜 이렇게까지 강력해졌는지 이해가 됐습니다.예고편은 숏폼의 원조였다줌은 2000년, 한국 영화산업.. 2026. 8. 3.
세계 영화시장은 회복했는데, 한국은 왜 그 이야기에 없을까 영화진흥위원회 정책개발팀이 올해 5월 칸국제영화제 현장에서 작성한 리포트를 읽다가, 한 문장에서 한참 멈춰 섰습니다. 유럽시청각관측소(EAO)가 발표한 2025년 세계 영화산업 분석 보고서 'FOCUS 2026'을 소개하면서, 리포트 필자들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중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시장이 2025년 세계 영화산업 회복을 주도했다는 분석은 분명 고무적이었지만, 그 중심에 한국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아쉬움으로 남았다."이 한 문장이 유독 마음에 걸렸습니다. 지난 몇 년간 저는 K-콘텐츠의 세계화,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의 성취, 감독 프랜차이즈까지 만들어낸 한국 영화산업의 저력을 이야기해왔습니다. 그런데 정작 세계 영화산업을 조망하는 국제 보고서에서, 아시아 시장의 회복을 이야기할.. 2026. 8. 2.
한국영화 각본집 시장의 흥행 공식(팬덤, 다른 공식) 서점에 들렀다가 예술 분야 베스트셀러 매대 맨 앞줄에 놓인 책 한 권을 보고 걸음을 멈춘 적이 있습니다. 『왕과 사는 남자』 각본집이었습니다. 영화는 이미 봤지만 굳이 각본집까지 사야 하나 싶어 한참을 서서 뒤적였습니다. 그런데 대사가 아니라 지문을 읽다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영화에서 스쳐 지나갔던 장면 하나하나에 이렇게 섬세한 지시문이 붙어 있었다는 걸 그제야 알았습니다. 결국 계산대로 가져갔습니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 책, 저만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출간 전 예약판매만으로 4쇄를 찍었고, 예스24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으며, 지금까지 9쇄 2만 5천 부가 팔렸습니다.1,690만 관객을 넘긴 영화의 성공이야 그렇다 쳐도, 종이책 한 권이 이 정도로 팔린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그래서 이 시장을 .. 2026. 7. 27.
IP 없이 감독 이름 하나로 — 『군체』가 증명한 '감독 프랜차이즈'라는 새 자산 말레이시아 영화관 앞에 걸린 포스터를 상상해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극장에 마블 영화 포스터가 걸리듯, 저 멀리 동남아시아 어느 나라에서는 '연상호'라는 이름 석 자가 그런 신뢰의 상징이 되어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처음엔 과장된 상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군체』의 말레이시아 흥행 기록을 보고 나니, 이건 상상이 아니라 이미 벌어진 현실이었습니다.말레이시아 역대 한국 영화 흥행 순위 1위가 『군체』, 2위가 『부산행』, 3위가 『반도』입니다. 전부 연상호 감독의 좀비 스릴러입니다. 한 나라의 한국 영화 흥행 역사를 한 감독이 처음부터 끝까지 독점하고 있는 이 기록을, 저는 단순한 우연이나 개인기로 넘길 수 없었습니다. 이건 분명 구조적인 현상입니다.숫자가 말해주는 것『군체』는 올해 칸 국제영화.. 2026. 7. 26.
제작비 700억으로 할리우드와 붙는다 — 『호프』가 제시한 한국영화 새 흥행 공식(새로운 공식, 생존 전략, 조건) 몇 년 전만 해도 저는 한국영화 제작비 뉴스를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졌습니다. 100억, 200억을 들인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다는 기사, 그다음엔 어김없이 "내수시장만으로는 답이 없다"는 전문가 코멘트가 따라붙었습니다. 그 말이 이제는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로 반복됐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호프』 관련 기사를 읽다가 눈에 걸리는 숫자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국내 개봉도 하기 전에, 200여 개국 선판매만으로 제작비의 절반을 이미 회수했다는 것이었습니다.이 숫자를 보고 저는 잠깐 멈춰 섰습니다. 위기라고만 불리던 한국 영화산업 안에서, 이건 분명 다른 종류의 이야기였습니다. 적자를 걱정하는 뉴스가 아니라, 새로운 공식을 시험하는 뉴스였습니다.나홍진 감독이 먼저 인정한 것: "내수만으로는 .. 2026. 7. 26.
『호프』 리뷰: 산속에서 만난 외계인, 156분 추격전의 실체(외계인, 할리우드, 특별한 이유) * 이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상영관에 앉아 있던 세 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저는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는 걸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팝콘을 사놓고 절반도 못 먹었습니다. 그럴 여유가 없었습니다. 『호프』는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을 뛰게 만드는 영화였고, 저는 정말로 그 156분 동안 계속 도망치는 기분으로 스크린을 봤습니다.영화가 끝나고 극장 불이 켜졌을 때, 옆자리에 앉은 낯선 분이 작게 혼잣말을 하는 걸 들었습니다. "와, 이걸 진짜 한국영화가 만들었다고?" 저도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우주 함선이 구름을 뚫고 나타나는 장면을 보며 극 중 동네 할아버지처럼 저도 속으로 되뇌었습니다.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1980년대 비무장지대, 그리고 외계인 넷『호프』는 1980년.. 2026. 7. 25.
작성자: sangsang6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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